이따 좀 남으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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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 좀 남으라고요?
최광희 목사
“이따 좀 남으라고.....”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본 말이었다.
지난주, 2026 한국교회 부활절연합예배에서 소강석 목사가 축사하는 중에 이재명 대통령을 소개하다가 여의도순복음중앙교회 교인들이 박수하자 불쑥 이렇게 말했다.
“예, 박수하세요! 도대체 저기 박수 안 치는 사람 누구예요? 이따 좀 잠시 남으라고”
이 장면은 MBC TV 등에 그대로 방영되었고 그때부터, 부활절 연합예배가 과연 예수님의 날인지 정치인의 날인지, 또한 여러 면에서 반성경적 정책을 펼치는 대통령을 교회에서 그렇게 띄워도 좋은 것인지, 목사가 교인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이따 남으라고 하는 표현은 적절한지 등 한 주간 내내 여러 신문 칼럼과 SNS에 회자되었다.
“이따 남으라.” 이 말 정말 오랜만에 들어본다. 돌이켜보면 이 말은 늘 긴장감을 유발했다.
초중고 시절에 선생님이 “이따 수업 끝나고 남으라”, “이따 교무실로 오너라” 이런 말을 하면 대개는 좋을 일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 대신 무슨 지적을 당할지, 무슨 책망을 들을지 불안불안했다.
군 복무 시절에 고참(선임)이 이따 화장실 뒤로 오라고 하면 그 날은 반쯤 죽을 것을 각오해야 했다. “대가리(머리) 박아”부터 시작해서 온갖 욕설에 시달린 군 복무 시절이 너무 지겨워 환갑이 넘은 지금도 연천 방향으로는 가고 싶지 않다.
영화를 보면 청소년 일진들이 약한 친구에게 “이따 옥상으로 따라 와”라고 윽박지르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안 따라갔다가는 학교생활이 괴롭고 따라가면 매 맞고 있는 돈 다 빼앗기는 청소년에게 “이따 따라 와”는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을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예배당에서 드려진 부활절연합예배에서, 대형 교단 총회장을 역임한 고매한 목사의 입을 통해 듣게 될 줄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그 말과 함께 그날 있었던 일들은 이미 여러 사람이 다양하게 평가했으니 거기에 더 머물고 싶지는 않다. 대신에 “이따 남으라”라는 말은 나를 다른 장면으로 이끈다.
오병이어 기적 이후, 예수님은 떡을 배불리 먹고 기뻐하는 무리에게 너희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만 영생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자 많은 무리가 그 말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떠났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물으셨다. 이는 제자들을 강제로 붙잡아 두겠다는 위압적인 말씀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떠날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자발적으로 남도록 부르는 다정한 물음이었다. 나를 떠나서는 안된다는 간절한 촉구였다.
또 한번은 예수님이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서 “내 안에 거하라”, “내 사랑 안에 거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 역시 힘으로 제자들을 붙잡아 두겠다는 것이 자발적으로 머물게 하는 사랑의 초대였다.
이 말에 특별히 감동한 요한 사도는 요한복음에 그 사건을 기록하였고, 요한일서에서 두 번이나 “주 안에 거하라”, “그의 안에 거하라”라고 성도를 권면했다. 주님의 부르심은 강제로 불러가는 호출이 아니다. 사랑에 감복하여 스스로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고 자발적으로 주님께 남아 있는 것이다.
“남으라”라는 말과 “거하라”라는 말은 작은 차이 같지만 그 말 다음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교회는 사람을 붙들어 두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머물게 하는 곳이다. 교회는 통제받는 곳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모이는 곳이다. 교회는 눈치 보면서 남아 있는 자리가 아니라 기쁨으로 머무는 자리이다.
목사가 해야 할 말은, 그것이 농담이든 진담이든, “이따 좀 남으라”라는 협박이 아니라 주님과 교회를 떠나지 말고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라는 다정한 초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히브리서가 반복해서 예수님을 떠나지 말라고 호소한 것과 같이, 목사의 말은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라는 간곡한 권면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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