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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글자 요한복음 연재(22): 짐승에서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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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글자 요한복음 연재(22):

짐승에서 사람으로!!

                                                         권혁정 교수


사마리아 수가 성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후, 주님은 이제 최종 목적지인 고향 갈릴리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던 가나로 가셨습니다(4:46). 이때 가버나움에서 왕의 신하가 급히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가나와 가버나움 사이는 500미터의 고도차를 두면서 대략 35킬로미터 떨어져 있는데, 이는 도보로 6시간 정도 걸리는 제법 먼 거리입니다.

본문의 왕의 신하(. 바실리코스)는 작은 왕으로도 번역될 정도의 고위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사람은 갈릴리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 밑에서 요직을 맡은 신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자가 고위직의 체면도 버리고 평범한 목수를 만나려고 종일 비지땀을 흘리며 찾아온 것은 아들의 질병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아들은 열병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를 찾아간 사실이 예수와 적대 관계에 있던 헤롯 왕의 귀에 들어가면 이 신하의 직위는 박탈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왕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직을 걸고 죽어가는 아들의 생명을 선택했습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 가버나움 동네로 내려가 아들을 고쳐 달라고 간청했습니다(47). 이에 주님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라고 그를 책망하셨습니다(48). 지금 예수님은 표적과 기사를 보고 믿는 것은 낮은 수준의 초보적인 믿음이며 바른 믿음은 이적 위에 세워지지 않고 말씀 위에 세워진다고 얘기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꾸중에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데, 이 신하는 언짢은 기색을 1도 표현하지 않고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라고 예수님께 다시 한번 애원했습니다(49). 사랑이 풍성하신 우리 주님은 아들을 살리려는 아버지의 애끓는 심정을 끝까지 못 본 체할 수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라는 놀라운 치유선언을 하셨습니다(50절 상). 여기 살아 있다(. )는 시제가 현재형으로, 이는 치유가 앞으로 일어날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그 순간 기적이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치병 선언을 듣자, 신하의 믿음이 변화되었습니다. 표적 신앙에서 말씀 신앙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아직 아들의 치병을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씀만 믿고 가버나움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이 신하는 더 이상 예수님께 가버나움으로 내려와 달라고 간청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공간적 주권을 가지고 계시기에 거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즉시 가버나움으로 향했습니다. 한참 가버나움으로 내려가고 있을 때 맞은편에서 오던 종들이 그를 만나 놀라운 소식을 들려주었습니다.

 

아이가 살아 있다(51).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은 틀림없이 성취됩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신하의 아들이 살아난 사건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약속의 확실한 성취를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따라서 마리아처럼 주께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굳게 믿는 자야말로 복된 자입니다(1:45).

본 치유 사건을 통해 우리는 왕의 신하에게 일어난 두 가지 변화를 목도할 수 있습니다. 첫째, 정체성의 변화입니다. “네 아들이 살아 있다라는 예수님의 치병 선언을 통해 살아난 것은 신하의 아들뿐이 아니었습니다. 그 선언은 사경을 헤매는 아들 때문에 짐승처럼 되었던 신하를 다시 사람으로 되돌려놓았습니다.

 

그 사람이 믿었다(50절 하).

 

저자 요한은 본문에서 사람(. 안뜨로포스)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썼습니다. 신하는 예수님의 선언으로 드디어 다시 인성을 회복한 것입니다.

둘째, 신앙의 대상의 변화입니다. 신하가 가진 믿음의 대상은 처음에는 기적, 이어서 말씀,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기적을 일으킨 말씀의 주어인 예수로 이동했습니다. 이처럼 신하의 신앙은 기적에서 말씀으로, 말씀에서 예수 자신으로 바뀌는 성장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런 패턴으로 계속해서 성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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