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영생교회 정요셉 목사 이단 심사 평결의 신학적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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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 이단대책위원회는 '상황화'를 배교의 면죄부로 삼고 있는가-
의사가 오진(誤診)을 하면 한 사람의 육체를 위태롭게 한다. 그러나 목사의 신학적 오진은 수많은 영혼을 영원한 파멸로 몰아넣는다. 이 엄중한 진리를 앞에 두고, 필자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이단대책위원회(이하 이대위)의 직무유기를 공개적으로 고발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익산 영생교회에서 권사로 섬기며 목격한 정요셉 목사의 비성경적 설교와 목회 행태에 대해 이대위에 공식적인 이단성 심사를 청원하였다. 그 결과 돌아온 것은 진지한 신학적 검토가 아니라, 명백한 이단적 요소들을 '단어 선택의 실수'와 '상황화 신학'이라는 궤변으로 덮어버린 무성의한 회신이었다. 감리교 본부가 이 평결을 방치한다면, 이는 교단 전체의 신학적 정체성을 포기하는 행위가 된다.
1. 문제의 본질: '상황화'는 신학적 논거인가, 면죄의 도구인가?
'상황화(Contextualization)'는 본래 선교학에서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특정 문화와 상황에 맞게 복음을 표현하는 방법론이다. 그러나 이대위는 이 개념을 복음의 본질 자체를 바꾸는 것까지 정당화하는 논리로 남용하고 있다. 상황화는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의 문제이지,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정요셉 목사의 "이슬람교도에게도 성령이 임한다"는 취지의 발언은 표현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성령론의 내용 자체를 변개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대위는 이를 '해외 목회 현장과 국내 목회 현장의 차이'라는 말로 포장하여 면죄부를 주었다. 이는 상황화 신학의 정당한 적용이 아니라, 상황화를 이단 심사 회피의 수단으로 전용(轉用)한 것이다.
2. 성령론의 변개: 예수님 없이도 성령이 임하는가?
정요셉 목사는 성령님이 이슬람을 믿는 튀르키에에도 임할 수 있다는 취지로 설교를 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성령을 '진리의 영'이자 '예수를 증언하는 영'(요 15:26)으로,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내주하시는 분(롬 8:9)으로 명확히 증언한다. 예수님을 이단이라 배척하는 이슬람 교리 위에 서 있는 무슬림에게 성령이 임한다는 주장은, 이 성경적 성령론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것은 스탠리 사마르타(Stanley Samartha)와 웨슬리 아리아라자(Wesley Ariarajah) 같은 WCC 종교다원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보편적 성령론', 곧 예수 그리스도를 배제한 채 모든 종교에 성령이 역사한다는 배교적 주장과 그 궤를 같이한다.
이대위는 이 발언을 '해외 목회 현장과 국내 목회 현장에서의 차이에서 비롯된 해석'으로 해명하였다. 그러나 이는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복음 선교의 현장이 어디인가에 따라 성령의 임재 조건이 달라진다면, 성령은 국경을 기준으로 다른 분이 되는 것인가?
성령님이 해외에서는 이슬람에도 임하시고 국내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만 임하신다는 것인가?
성령님이 무속인이 많은 현장에서는 작두를 타고 임하시고 불교가 많은 곳에서는 목탁을 두드리며 임하신다는 것인가?
3. 대속론의 왜곡: 십자가는 환경 회복을 위한 것인가?
정요셉 목사는 또 다른 설교에서 예수님께서 '만물의 회복, 곧 자연환경 회복'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그리스도의 대속이 죄인의 구원에 있다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롬 5:8; 고전 15:3)를 변질시킨 생태신학적 관점이다. 생태신학은 만물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뉴에이지 사상에 기초를 둔다.
감리교 이대위는 생태신학의 위험성을 심의 과정에서 충분히 인지했음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정요셉 목사의 설교에 대해서는 '단어 선택의 실수'라는 관대한 평결을 내렸다. 이것은 심사 기준의 이중성을 드러낸다. 원칙은 알면서 특정인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직무유기다.
4. 혼합주의의 방치: 관상기도, 유진 피터슨, 세계 성찬주일
문제는 성령론과 대속론에만 머물지 않는다. 정요셉 목사는 예장합동·합신 등 주요 복음주의 교단에서 그 신비주의적 위험성을 경고하거나 금지한 '관상기도'를 최고의 기도로 가르쳤다. 또한 뉴에이지적 성향과 성경 번역의 정확성 문제로 비판받는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The Message)』에 정경과 대등한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나아가 가톨릭과의 일치를 위한 행사인 '세계 성찬주일'을 무척 성실히 준수하고, 불신자에게까지 성찬을 허용하는 행태도 확인되었다.
이 모든 것들은 개별적으로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하나의 패턴 속에서 볼 때 더욱 우려스럽다. 성경의 권위를 희석시키고, 기도를 신비주의로 대체하며, 성례를 혼합주의화하는 일련의 흐름은 WCC형 혼합주의 신학의 전형적인 경로다. 이대위는 이 패턴 전체를 보아야 할 의무가 있었으나, 정요셉 목사를 보호하기 위해 개별 사안을 파편화하여 각각 '면죄'하는 방식으로 평결을 왜곡하였다.
5. 절차적 정의의 훼손: '이단 심사'를 '이단 시비'로 격하하다
이대위의 회신문에는 주목해야 할 언어적 기만이 숨겨져 있다.
필자가 요청한 것은 명백히 '이단성 심사'였다. 그러나 이대위는 회신에서 이를 '이단 시비성 관련 조사결과'라고 명명하였다. '시비(是非)'란 개인 간의 말다툼이나 감정적 분쟁을 뜻한다. 이단의 가능성이 있는 신학적 주장을 공식 심사 기관에 제소한 것을, 개인적 감정 싸움으로 격하시킨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용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제소자의 정당한 신학적 권리를 모독하고 사건의 본질을 희석하기 위한 의도적 언어 조작이다.
또한 이번 평결과 관련하여 교육국 총무인 김두범 목사(목원대)가 평결문 전달을 지연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 그리고 이대위 위원장 우광성 목사와 정요셉 목사 사이의 학연(목원대) 유착 의혹도 배제할 수 없다. 진리를 수호해야 할 기관이 인적 네트워크에 의해 좌우된다면, 그것은 이미 공정한 심사기관이 아니다.
6. 영적 폭력과 공동체 배제: 양은 목자에게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비성경적 가르침에 대해 성경적 문제를 제기한 성도는 목회자로부터 소통을 차단당하고 공동체에서 고립되었다. 영생교회는 필자의 장인어른이 설립한 교회이다. 그러나 이단적인 설교를 항의하다가 필자와 필자의 가족은 교회를 위해 헌신해 온 가문이 배척받고 떠나야 하는 상황으로 몰린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마 18:6)는 주님의 경고는 오늘도 유효하다.
진리를 지키려는 성도를 침묵시키고 고립시키는 행위는 목회 실패를 넘어 영적 폭력이다. 그리고 이를 묵인한 이대위는 그 공범이 된다.
결언: 감리교는 웨슬리의 복음주의 위에 바로 서야 한다 이번 평결이 알려지자 예장통합, 합동, 합신, 백석, 고신, 침례, 성결, 순복음 등 타 교단의 목회자들은 경악하며 감리교가 과연 개신교회의 일원인지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것은 한 교회나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감리교단 전체의 신학적 정체성과 한국 교계 내 위상에 관한 문제다.
감리교 본부와 감사위원회는 세 가지를 즉각 시행해야 한다.
첫째, 이대위의 평결 과정 전반에 대한 전수 감사를 실시하여 학연 유착과 평결 조작 여부를 규명해야 한다.
둘째, '이단 심사'를 '이단 시비'로 격하한 언어 조작에 대해 이대위가 공식 해명하고 사과해야 한다.
셋째, 정요셉 목사의 설교들에 대한 재심사를 공정한 위원 구성 아래 진행해야 한다.
존 웨슬리는 성경적 진리를 위해 안락한 제도권 교회를 거부하고 광야로 나갔다. 감리교는 그 복음주의 정신의 후예다. '상황화'와 '해외 목회 현장과 국내 목회 현장에서의 차이'라는 궤변 뒤에 숨어 기독교의 근간을 흔드는 가르침을 방치하는 것은 웨슬리의 유산을 스스로 배반하는 것이다. 감리교단이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자 한다면, 지금이 바로 무너진 영적 질서를 회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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