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신조, 그리고 WCC를 통한 종교개혁 이전으로의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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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완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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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로 쓴 개혁의 역사

중세의 종교개혁은 로마 가톨릭의 부패와 타락에 맞선 거룩한 저항이었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내건 95개조 반박문은 거대한 파동이 되어 '개혁교회(Reformed Church)'의 탄생을 알렸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완벽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후 칼빈, 존 낙스 등 수많은 개혁자에 의해 개신교의 기틀이 잡혀갔다.

그러나 진리를 수호하는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종교개혁 이후에 로마카톨릭으로부터 개혁교회는 심한 박해를 받았는데, 특히 개혁교회는 루터파보다 더 심한 핍박을 받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카펠전쟁(1531년)이다. 

카톨릭의 지배 아래 있던 스위스 연방의 5개 주(州)가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고, 개신교가 확산되던 취리히를 공격한 이 전쟁에서 개신교는 패배했다. 이 전쟁으로 쯔빙글리를 포함한 스무 명의 목사가 전사했다. 쯔빙글리는 죽는 순간까지 카톨릭의 고해성사 요구를 거부했고, 그 결과 몸이 네 토막으로 잘리는 참혹한 죽임을 당했다. 카톨릭교회는 그 시신을 불태우고 재를 인분에 뿌리며 승리를 자축했다.


카펠전쟁은 시작에 불과했다. 

1572년 8월 24일, 프랑스에서는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이 자행되었다. 카톨릭 세력이 하룻밤 사이에 수만 명에 달하는 프랑스 개신교인, 즉 위그노(Huguenot)들을 파리 전역에서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이 사건은 당시 카톨릭이 개신교를 얼마나 철저히 제거하려 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다.

이 시대에 개신교인이 된다는 것은 곧 죽음을 각오하는 일이었다.


2. 목숨으로 지켜낸 세 가지 신조

이런 극한의 박해 속에서도 개혁교회는 신앙의 일치를 위해 정체성을 정립해 나갔다. 그 결정체가 바로 ‘세 일치 신조(Three Forms of Unity)’다.


첫 번째는 벨직 신앙고백(1561년)이다. 

벨기에에서 작성된 이 고백서의 편집자 귀도 더 브레(Guido de Bres)는 당시 스페인의 지배 아래 개신교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는 스페인 왕 필립 2세의 궁전 담벼락에 이 신앙고백서를 던져 넣으며, 개신교인들이 결코 반역자가 아니라 성경에 충실한 신앙인임을 온 세상에 호소했다. 그리고 그는 1567년, 자신의 개혁 신앙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의 나이 마흔다섯이었다.



두 번째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563년)이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작성된 이 신조는 "사람의 유일한 위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성도의 삶 전체를 성경 위에 세우고자 한 개혁교회의 정수를 담고 있다.


세 번째는 도르트 신조(1619년)이다. 

화란(네덜란드)에서 열린 도르트 총회에서 작성된 이 신조는, 당시 교회를 흔들던 알미니우스주의의 인본주의적 오류를 성경적으로 반박하고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분명히 천명했다.


이 세 신조를  일치 신조(Three Forms of Unity)라고 부르는 이유는, 서로 다른 나라, 서로 다른 시대에 작성되었지만, 그 신학적 핵심이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는 성경적 진리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함을 증명한다. 

그 핵심은 종교개혁의 세 원리, 곧,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이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성경의 권위 아래서만 주어진다는 이 선언이야말로 수많은 순교자들이 목숨으로 지켜낸 진리였다.

종교 개혁자들에게 신조란 단순한 글귀가 아니라, 생명을 다해 지켜내야 할 진리의 마지노선이었던 것이다.


3. WCC, 종교개혁 이전으로의 회귀

그런데 오늘날 세계교회협의회(WCC, World Council of Churches)는 이 피값으로 세워진 개혁의 유산을 조용히, 그러나 체계적으로 허물어가고 있다.

WCC가 내세우는 논리는 언뜻 듣기에 관용적이고 평화로워 보인다. 

"높은 산의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여럿이듯, 모든 종교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든, 불교나 힌두교를 믿든, 고목나무에 빌든, 굿을 하든, 어떤 종교적 수행을 하든 모두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이 주장은, 신학적으로는 "보편구원론(Universalism)"이며, 성경이 명백히 경고하는 다른 복음이다(갈라디아서 1:8).


WCC는 실제로 1986년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열린 세계평화기도회에 참여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불교, 힌두교, 이슬람 등 각 종교 지도자들과 나란히 기도를 드리는 자리에 함께했다. 이것은 단순한 평화 운동이 아니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요한복음 14:6) 성경의 선언을 사실상 부정하는 행위였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WCC가 로마 카톨릭을 중심으로 모든 종교를 통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종교개혁자들이 목숨을 걸고 벗어나고자 했던 바로 그 체제, 로마 카톨릭의 권위 아래로 개신교를 다시 되돌리려는 시도이다. 

귀도 더 브레가 교수대에 서면서도 지키고자 했던 것, 쯔빙글리가 몸이 찢기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 신앙이, 오늘날 '일치'와 '화합'이라는 이름 아래 조용히 지워지고 있는 것이다.


4. 오늘 우리에게 묻다.

WCC나 WEA의 종교통합 운동은 단순히 신학적 오류에 그치지 않는다. 

성경은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거짓 종교가 전 세계를 미혹할 것을 경고한다(요한계시록 13장, 데살로니가후서 2:3-4). 종교의 이름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하나의 체계 아래 묶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자라는 진리를 희석시키는 이 흐름은, 그 예언의 성취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결국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세계단일종교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고(mind control), 다가올 적그리스도의 나라를 완성하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가 속한 교단이, 우리가 다니는 교회가, 우리가 신뢰하는 지도자가 이 흐름 앞에 어디에 서 있는가? 

귀도 더 브레는 목숨을 걸고 신앙고백서를 붙잡았다. 쯔빙글리는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도 고해성사를 거부했다. 그분들이 지키고자 했던 그 진리, 오직 예수 그리스도, 오직 성경, 오직 은혜의 복음이 종교 개혁가들의 후예인 오늘 우리의 손에서 얼마나 소중히 붙들려 있는지를 다시금 돌아볼 때이다.


이 완구 원장 (맑은샘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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