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기도의 위험성과 이단적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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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완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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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마태복음 12:43-45 )


관상기도의 위험성과 이단적 요소


어떤 목사는 야곱이 꿈에 본 사닥다리를 기도라고 하면서 기도 중의 가장 최고의 기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기도는 관상기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야곱의 사닥다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는 야곱의 사닥다리 사건(창 28:12)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늘과 땅의 연결, 곧 중보자이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관상기도를 합리화하고 주장하는 목사들은 종종 야곱의 사닥다리를 기도로 해석합니다.

이와 같은 해석은 새로운 해석학(New Hermeneutics)이라는 자유주의 신학의 성경 해석방법입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풀이하지 않고, 자신의 주관적 생각과 감정을 기반으로 해석하는 방법이지요.

새로운 해석학은 성경 본문이 가진 구속사적 의미나 객관적 메시지보다 독자의 주관적 해석을 우선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해석 방법은  성경 본문을 약화시키고,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야곱의 사닥다리를 "기도"로 축소 해석하는 것은 성경 본문의 초자연적이고 구속사적인 메시지를 축소하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제공하신 은혜의 통로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간과하는 심각한 신학적 오류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사닥다리"가 자신임을 명확히 밝히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것이며, 이는 성도들에게 영적 혼란을 초래하고 신앙의 본질을 왜곡하는 위험한 설교라 할 수 있습니다.


관상기도는 힌두교와 선불교의 영향을 받은 이단적인 기도로, 관상기도의 대가인 카톨릭 신부 토마스 머튼은 관상기도를 하다가 선불교로 전향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관상기도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헬리 나우웬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결국은 다 천국에 갈 것이라고 역설하였습니다. 유진 피터슨, 달라스 윌라드, 리차드 포스터, 토마스 머튼, 등은 관상기도나 하나님의 음성 듣기 운동 같은 불건전한 신학으로 기독교를 뉴에이지 사상으로 오염 시키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모두 종교 혼합주의를 추구하며 보편 구원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1. 관상기도의 역사적 배경

관상기도는 AD 2세기경부터 시작된 신플라톤주의와 초기 교부 신학의 영향을 받은 기도 방식입니다. 이 기도는 로마 카톨릭의 수도원 전통에서 발전했으며, 동양의 명상 기법과 유사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관상기도는 "무념무상"의 상태를 추구하며, 인간의 내적 의식을 신과 연결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법은 성경적인 하나님의 계시와는 무관하며, 불교와 힌두교의 명상과 비슷한 형태를 띱니다.

 

2. 관상기도와 신비주의

관상기도는 신비주의적 체험을 강조하며, 신비적 합일을 통해 신과 가까워진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과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입니다

토마스 머튼과 리차드 포스터는 관상기도의 현대적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그들의 가르침은 종교다원주의와 뉴에이지 사상과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토마스 머튼은 불교의 빛이 아니면 기독교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카톨릭 수도사였고, 결국 관상기도를 열심히 하다가 선불교로 전향했습니다. 이는 관상기도가 영적으로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3. 관상기도의 현대적 확산

리차드 포스터는 퀘이커 교도인데, 레노바레 운동을 통해 관상기도를 현대 교회에 도입하려 했습니다

레노바레 운동은 로마 카톨릭의 영성 훈련법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종교다원주의적 관점을 반영합니다. 한국 교회에서도 이동원 목사와 김병삼 목사, 유기성 목사 등 일부 지도자들에 의해 관상기도가 확산되었으나, 관상기도가 이단적이라고 신학자들 사이에서 비판이 일자 이들은 관상기도 확산 운동을 중단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성도들에게 큰 혼란을 초래했습니다.

 

4. 관상기도의 방법과 위험성

관상기도는 특정 단어나 구절을 반복하며 "의식의 너머"로 나아가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이는 동양의 종교적 수행인 힌두교의 "만트라" 명상과 유사한 형태를 띱니다. 이러한 방법은 초월적 체험을 강조하지만,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인 기도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기도는 단순한 체험이나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대화이자 관계의 표현임을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러나 관상기도는 이러한 관계성을 배제하고,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신비적 체험만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정신을 비우는" 행위는 영적으로 매우 위험합니다. 예수님은 깨끗이 청소된 마음 상태가 악한 영들의 침입에 취약할 수 있음을 경고하셨습니다(마태복음 12:43-45). 악한 귀신을 쫓아 냈더니 귀신이 갈 곳이 없어 돌아다니다가 정신이 비워지고 깨끗이 청소된 그곳으로 더 악한 귀신들과 함께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무념무상으로 마음을 비워 놓는 상태는 악한 영의 침입에 취약한 상태가 되므로, 관상기도를 통해 성령께서 임하시기보다는 악한 영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관상기도는 불교와 힌두교에서 강조하는 영적 체험과 많은 유사점을 보입니다. 힌두교의 요가 수행에서는 깊은 경지에 이르렀을 때 "악한 영과의 접신"을 경험하는데, 이를 쿤달리니(Kundalini)라고 합니다. 쿤달리니는 척추의 에너지(종종 뱀의 힘으로 묘사됨)가 깨어나는 것이라고 설명되지만, 실제로는 악한 영이 그 사람에게 개입하는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쿤달리니를 경험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져서 악한 영을 전달하는 현상이 있는데, 이를 샤크티파(Shaktipat)라고 합니다. 샤크티파를 통해 쿤달리니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동물의 소리, 이상한 웃음, 경련 등이 나타나는데, 이를 크리야스(Kriyas)라고 부릅니다.


놀라운 점은, 이런 샤크티파를 통한 쿤달리니 현상과 크리야스와 같은 현상이 현대의 일부 신비주의 기독교 운동, 특히 관상기도가들과 신사도 운동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신사도 운동에서 사람들에게 임한다고 주장되는 "성령의 체험" 중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비정상적인 웃음, 이상한 몸의 움직임, 비정상적인 소리 등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성경적 성령의 열매(갈라디아서 5:22-23)와는 거리가 멀며, 영적 혼란과 왜곡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심지어 성령을 분양(impartation) 한다고 합니다. 성령님이 아파트 분양 하듯이 사람 마음대로 분양이 되는 그런 분입니까? 신사도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신비한 체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고, 관상기도나 하나님의 음성듣기를 하는 사람들도 신비한 체험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 보니 신사도 운동과 관상기도는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기성 목사 같은 사람은 한국 교회에 신사도 운동을 많이 전파한 장본인이기도 하고 관상기도, 하나님의 음성듣기 등 비성경적인 내용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관상기도가 얼마나 위험한 혼합주의적 요소를 가졌는지는 그들의 대표적인 저술에서도 확인됩니다. 

필립 로메인은 자신의 저서를 통해 관상기도를 사실상 힌두교의 영적 각성 현상인 '쿤달리니 에너지'로 규정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관상기도 운동의 수장 격인 토마스 키팅조차 이 주장을 인정하며 추천사를 썼다는 점입니다. 기독교 영성의 핵심인 성령의 역사와 이교의 신비 체험을 한데 섞어버린 이들의 행보는 우리 시대 성도들이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분명히 보여줍니다.


불교에서도 수행자들이 면벽수도(, 좌선)를 하다가 겪는 주화입마(走火入魔) 상태는 의식적으로나 영적으로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빠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도 쿤달리니처럼 악한 영의 작용으로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관상기도 역시 이러한 상태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또한, 관상기도는 불교와 힌두교의 명상적 요소를 흡수한 뉴에이지 수련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토마스 머튼은 불교와 기독교의 융합을 시도하며, 불교 수행법과 사상에 큰 영향을 받은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토마스 머튼은 불교의 달라이 라마 및 일본의 선불교가인 스즈키 다이세츠로부터 관상기도를 배웠는데, 그는 불교의 빛으로 기독교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나는 수피즘으로 충만해 있다. 나는 불교와 기독교 사이에 모순점을 발견할 수 없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좋은 불교도가 되려고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성경적 신앙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영과 접신하게 만듭니다.

 

결국, 관상기도는 겉으로는 영적 체험을 제공할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적 기도가 요구하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이고 의식적인 소통 대신, 무분별한 영적 문을 열어 악한 영을 끌어 들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추구하는 기도를 가르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과 소원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분의 뜻을 구하며, 그분과의 인격적 교제를 통해 살아있는 신앙을 추구해야 합니다.

 

관상기도나 하나님의 음성듣기를 하자고 가르치는 사람들에 대해 한국 교회는 심히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23;16)”

 

5. 성경적 기도의 본질

성경은 기도에 대해 분명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기독교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를 중심으로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분의 뜻을 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은 기도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주는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부름으로, 내가 누구에게 기도하고 있는지 기도의 대상이 명확히 정해져 있습니다. 이와 비교했을 때, 관상기도는 기도의 대상을 정하지 않은 채,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영혼을 텅 빈 상태로 비워 두어 이곳에 찾아 오는 대상과의 합일을 추구하기 때문에 성경적 기도의 본질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6. 교회의 책임과 분별력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성도들을 올바르게 인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예장 합동측과 예장 합신측은 관상기도와 레노바레 운동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이를 배격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이는 성도들의 신앙을 보호하고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조치였습니다. 성도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관상기도와 같은 이단적 요소를 경계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한 참된 기도와 예배에 집중해야 합니다.

 

7. 결론: 성경적 해석과 교회의 경계

야곱의 사닥다리를 기도와 연결한 해석은 성경적 해석의 기본 원칙을 무시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해석법을 따른 것입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기도에 대한 가르침 역시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관상기도를 "기도 중의 최고의 기도"로 찬양하며, 성도들이 이를 사모하게 하는 것 역시 이교적 관습을 교회 내로 들여오는 위험한 행동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성경적 진리를 지키며, 영적 분별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관상기도와 같은 이단적 요소를 경계하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참된 기도와 예배에 충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성경적 기도의 본질을 배우고, 이를 삶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성도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성경의 가르침에 반하는 잘못된 사상을 분별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관상기도와 같은 이교적 요소에 대한 경고는 단순히 신학적 논쟁이 아니라, 성도들의 영적 안전을 위한 필수적인 조치입니다.


참고로 예장 합동측은 20119월 총회에서 관상기도에 대해 어떠한 교류도 삼가며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고 결의한 데 이어, 예장 합신측 역시 관상기도 운동과 레노바레 운동에 대해 참여하지 말 것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이완구 박사(맑은샘내과 원장)
이 글은 필자가 감리교 이대위에 제출한 보고서 중 관상기도 부분을 발췌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작성하기 위해 고신의 정태홍 목사님의 영상을 보면서 관상기도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한국 교회를 바르게 이끄시기 위해 노력하시는 훌륭하신 목사님들이 계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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