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묵상 글; 닭 울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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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완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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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드로가 들은 닭 울음소리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신 후 마침내 체포되셨다. 로마 군병들과 대제사장의 하속들이 횃불을 들고 몰려와 그분을 사로잡자, 주님을 목숨보다 사랑한다던 제자들은 무서워서 모두 도망쳐버렸다.

그러나 베드로는 멀찍이서 예수님을 뒤따랐다. 그도 겁이 났지만, 스승에 대한 애정과 걱정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뜰로 끌려가셨고, 베드로는 사람들 틈에 섞여 불을 쬐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때 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자 한 여종이 그를 지목했다. “이 사람도 예수와 함께 있었어요.”

순간 베드로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나는 그 사람을 모르오.”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려 뱉은 거짓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세 번째 부인에 이르러서는 저주하며 소리쳤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니까!”


베드로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어딘가에서 닭이 울었다. 그 소리와 동시에 주님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바라보셨다.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이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베드로의 가슴에 박혔다. 베드로는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그는 몸을 가누지 못한 채 통곡했다. 주님을 향한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미약하고 초라했는지를 깨달은 베드로는 무너진 심장으로 통곡했다. 닭 울음소리는 베드로의 영혼을 깨우는 하나님의 경고였던 것이다.

닭 울음 소리를 듣고 베드로는 회개했고 마침내 예수님은 그를 다시 회복시켜 주셨다.

그 후 그는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반석이 되었다. 


2. 목사님, 당신은 닭 울음소리를 듣고 있습니까?

담임목사의 강단에서 반복되어온 왜곡된 복음, 비성경적인 신학, 성찬의 남용과 예전의 혼란…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차마 침묵할 수가 없었다.
담임목사에게 멧세지를 보내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그의 자존심을 건드릴까 염려되었고, 담임목사와의 관계를 잃게 될까 두렵기도 하였다.
하지만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하나님의 진리에서 벗어났을 때, 경고하고 바로잡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파수꾼의 책임이라 생각했다.
에스겔서 33장 6절에는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면, 그 피값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담임목사는 나의 경고를 “동의할 수 없는 신학적 소견”이라 치부하며 대화조차 거부했다.
카톡을 차단하여 나와의 인격적 관계를, 모든 것을 끝내려 했다.
-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에게도 성령이 임한다고 설교한 것,
- 예수님의 심자가의 죽으심을 '자연환경 회복'으로 왜곡시킨 것,
- 유진 피터슨의『메시지』를 성경과 같은 권위로 인용한 것,
- 자유주의 신학자를 강사로 세우는 것.
- 교회 처음 나온 이들에게 성찬을 허락한 것,
- 카톨릭과 연합하는 세계성찬주일을 지킨 것...
이런 것들은 복음의 본질을 뒤흔드는, 중대한 신학적 왜곡이었다. 한마디로 이단적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조차 주님을 부인했다.
그러나 그는 닭 울음 소리를 듣고 회개했고, 돌이켜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반석이 되었다.

하물며 베드로보다 더 연약한 목사와 성도들에게 어찌 실수가 없겠는가. 문제는 실수 자체가 아니라, 그 실수에 대한 태도이다.

어떤 이는 교만으로 자존심을 앞세우며 끝내 회개하지 않지만, 어떤 이는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린다.
회개하는 그 모습이야말로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신앙이다

그러나 나의 생각과는 달리 담임 목사는 나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어쩌면, 나의 외침은 그 목사의 인생에 울려 퍼진 닭 울음 소리였을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마지막 경고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듣지 않았고, 회개하지 않았다.
오히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 바베큐를 해 먹으려 했다.
자기 권위에 갇혀, 회개의 기회를 걷어차고 말았다.

3. 나는 진정 닭 울음소리를 듣고 있는가?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닭 울음소리를 들어야 할 사람이다.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할 때, 그것이 정말 성경적 공분이었는지, 아니면 내 안의 분노와 자만이 덧씌운 판단은 아니었는지, 날마다 내 마음을 비추어 본다.
베드로가 들었던 닭 울음소리는,
담임목사의 귀에만 울려야 할 경고가 아니라,
진리를 말한다고 외치던 내 마음에도 울려야 할 하나님의 나팔이다.
혹시 나는, 주님의 영광을 위한 싸움이라 포장하면서
실은 내 자존심과 정당성을 지키기 위한 칼을 들고 있던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지금도 조용히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나는 지금 닭 울음소리를 듣고 있는가?
나는 진심으로 회개하고 있는가?
진리를 지키는 이 싸움조차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오히려 교만이 될 수 있음을 나는 잊지 않으려 애를 쓴다.
특별히 이번 고난주간, 그 닭 울음소리가 우리 모두의 잠든 영혼을 깨우는 은혜의 소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주님.
닭 울음소리를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우리의 완고함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베드로처럼 회개하며 울 수 있는 은혜를 주시고
진리를 말하면서도 교만해지지 않도록
늘 말씀 앞에서 저를 낮추는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옵소서.

이 고난주간,
잠든 우리의 영혼을 다시 깨우시고
회개의 눈물로 주님께 돌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담천(澹泉) 이 완구 (맑은샘내과 원장, 전 익산영생교회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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